221129_[삭발투쟁결의문]_139일 차, 김도현(노들장애학궁리소)
- [결의문&발언문]
- 한자협
- 11-29
- https://www.kcil.or.kr/post/564
? 장애인권리예산 촉구 139일 차 삭발투쟁 결의문
이제 읽으려는 이 글은 투쟁결의문이라는 형식을 띠고 있긴 한데요, 단어의 본래적인 의미에서 보자면 이번 삭발을 제가 ‘결의했다’고 말하는 건 정확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3월 말부터 시작된 이 릴레이 삭발투쟁이 50회 차를 넘어가고 100회 차에 다가서면서, 만일 이 투쟁에 어느 날 구멍이 생긴다면 그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마다하지는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고 있었던 것이죠. 그러고 보면 저에 앞서 일백서른여덟 번의 삭발을 주말과 휴일을 빼면 하루로 거르지 않고 이어온 동지들의 투쟁이 저를 ‘결의시킨’ 것에 더 가깝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2000년대 초반 이동권투쟁을 시작하던 당시, 지하철 선로도 여러 번 점거했고 또 지하철 타기 투쟁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20년이 지나 같은 방식의 투쟁을 같은 요구를 걸고 하게 되리라고는 사실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한국사회의 변화는 형식적이었고, 장애인 대중의 정당한 요구를 기만하고 회피해 왔던 것이죠. 저는 과거 전장연에서 상근할 당시 주로 정책을 담당했었는데요. 그때 자주 했던 얘기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정책이 없어서 장애해방이 안 이루어지냐!’라는 말이었죠. 사실 우리의 요구는 매우 간명하고 또 단순합니다.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며 살아가는 것’, 여기에 무슨 엄청나게 대단한 정책이 필요할까요.
그런데 그 당연한 시민의 권리를 장애인이 보장받기 위해서는, 단지 정책 같은 차원의 것이 아니라 이 사회의 기본 질서 자체를 재구축해야 한다는 것, 그 질서를 규정하는 자본의 권력과 비장애중심주의적 권력을 해체해 나가야 한다는 것, 고병권 선생님 말을 빌리자면 “사회 전체를 이동시키지 않고서는 학교조차 갈 수 없다는 것”, 그것이 우리가 지난 20여 년간 투쟁하면서 배우고 깨달아 온 사실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고 보면 2001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요구를 20년 넘게 외치고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분명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고, 또 커다란 발전을 이루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당시에는 시설 민주화를 이야기했다면 이제 우리는 ‘탈시설’을 이야기하고 있고, 당시에는 우리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최중증장애인의 노동권을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를 통해 요구하고 싸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1년 당시에는 한 달의 천막농성을 지킬 실무자가 없어 힘겨워했지만, 이제는 1,842일간의 농성을 ‘조직적으로’ 사수해 낼 수 있는 역량을 갖게 되었고, 또 이렇게 8개월에 걸친 삭발투쟁을 매일같이 결의해 낼 수 있는 동지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서로의 손을 맞잡은 단단한 우리가 있기에, 장애인 대중의 정당한 요구를, 장애인권리예산을 기필코 쟁취해 낼 수 있을 거라고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될 때까지 할 테니까요.
저는 현재 노들장애학궁리소라는 곳에서 연구활동을 중심으로 장애인운동에 결합하고 있습니다만, 이번처럼 제게 요구되는 역할이 있다면 언제든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 안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투쟁이 장애해방을 향한 새로운 질서를 열어 가는 데 작은 보탬이 될 수 있도록, 더 치열하게 읽고, 고민하고, 쓰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투쟁하겠습니다. 투쟁!
? 결의문 모아 보기: https://bit.ly/삭발결의문
✅ 한자협 19주년기념 영상 링크: https://youtu.be/rjB4SQYs5b4
? 투쟁 100일 차_133명 삭발 기록영상: https://youtu.be/UPKq2OMj5f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