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2025 자립왕 수기13-박초현] “살고 싶어서 탈시설했고, 바꾸고 싶어서 투쟁한다”

JH
2025-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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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0년 동안 시설에서 살다가 작년 여름에 탈출했어요. 그리고 올해 초부터 저만의 집을 구해 혼자 살고 있습니다. 저의 이름은 박초현입니다.

처음으로 ‘혼자’ 추석을 맞다

얼마 전 추석은 제가 이사하고 처음 맞는 명절이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처음 ‘혼자’ 맞는 명절이었습니다. 자립생활주택에서는 활보 샘이 있어서 음식도 해 먹고 나름 재밌는 명절을 보냈고, 올 설에는 제주 삼달다방에 놀러갔었습니다. 그래서 온전히 혼자 연휴를 보내게 된 이번 추석엔 편히 집에서 쉬려고 했습니다. 잘 쉬어야 연휴 뒤에 있을 투쟁도 잘할 수 있으니까. 체력 충전도 하고 투쟁하느라 미뤄 두었던 집안일도 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좀 외로웠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같겠지만 시설에 있을 때가 그립기도 하고, 그런 생각을 하는 제가 잘못된 것 같기도 했습니다. 시설에서는 나는 원치 않았지만 사람이 끊이지 않고 오는데, 시끄럽고 사람 많은 걸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막상 이번 명절은 제게 명절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너무 조용하고, 약속도 없고, 보자고 하는 사람도 없어서 너무 외로웠습니다.

그래서 시설에서의 삶이 좋았냐고 묻는다면, 그 삶을 글로 어떻게 전해야 할까 막막하네요. 시설에서는 우선 직원들의 눈치를 봐야 합니다. 무언가를 얻어 내려면 직원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려면 직원에게 잘 보여야 합니다. 시설 법인의 작업장에서 노동하며 제가 번 돈으로 노트북을 사는 것조차 직원의 허락을 맡아야 했습니다. 허락을 맡는 데까지는 한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시설에서는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해야 한다고 먹기 싫은 것도 먹이곤 했습니다. 저 너무 싫었어요. 저는 오이 향을 싫어하는데 급식으로 오이냉국이 나온 적이 있어요. 먹기 싫어서 안 받았는데 골고루 안 먹는다고 오이냉국을 다시 받게 해서 생활실로 가지고 올라가서 눕혀 놓고 먹인 적도 있고, 먹기 싫은 반찬을 억지로 먹게 해서 입에 한가득 물고 있다가 화장실로 가서 뱉은 적도 있어요. 나중에는 이런 방법을 쓴다는 걸 걸려서 삼키는 것까지 확인해야 생활실로 올려 보내기도 했지요. 이랬는데도 안 먹다가 걸리면 그날 간식을 안 주기도 하고 독방에 가두기도 했습니다. 근데도 전 이게 인권 침해라는 것을 몰랐어요. 골고루 먹어야 한다고 하니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탈시설, 나를 사랑하고 싶어서 해야 했던 일

시설에서는 많은 인권 침해 사건들이 일어나지만 저는 그래서 시설을 나온 건 아닙니다. 저는 살고 싶어서 탈시설했습니다. 다만 저는 살고 싶어서 시설에서 나와야 했습니다. 시설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이유로 장애인이 혼자 해 볼 기회조차 빼앗아 갑니다. 대신 해 주는 게 아니라 조금만 도와주면 할 수 있는 일인데도 혼자 할 기회를 빼앗고 결국 스스로 살아갈 힘조차 빼앗아 갑니다. 예를 들면 가스불을 켜는 일, 라면을 끓이는 일, 커피포트를 사용하는 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일, 걸음이 불편한 사람이 혼자 복도를 걷는 일. 그러니까 비장애인들이 보기에 장애인에게는 위험해 보이지만 살기 위해서 꼭 해야 하는 일들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시설에서 살 때 제가 세상에 필요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요. 결정도 못 하니까요. 시설이 결정해 주고 다 해 주니까 전 세상에 필요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소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저로서 살고 싶었고, 저를 챙겨 주고 싶었고, 사랑하고 싶었습니다. 단지 그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고 싶어서 시설을 박차고 나왔습니다. 그럴수록 시설의 공격과 서울시의 공격을 받았지만 탈시설해서 살아갈 수만 있다면 상관없었습니다.

작년 2월에 피플퍼스트성북센터에 입사하면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발달장애인 동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동료들은 시설을 궁금해했어요. 센터에서 제가 유일하게 시설 이용자였거든요. 그래서 시설에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시설에 대해서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에도 장애인의 권리에 대해 공부한 적이 있지만 시설을 나오는 게 나의 권리라거나 시설이 나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시설은 집이었고 우리는 집이 좋은지 나쁜지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집은 내가 사는 집이니까요.

시설에서 살고 있는 거의 모든 장애인이 그렇겠지만 제가 시설에 들어가게 된 이유를 저는 알지 못합니다. 알고 있는 동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장애인이 시설에서 살게 된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저의 첫 기억은 시설 정문이었거든요. 학교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건물은 학교 같은데 이곳이 나의 집이라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학교는 무언가를 배우러 가는 곳인데 집에서 무언가를 배워야 하는 것인가?’ 하는 느낌도 받았지요. 그렇지만 시설에 왜 들어가게 되었는지, 누구랑 들어갔는지, 부모는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처음엔 피플퍼스트 동료들과 싸우기도 했습니다. 내 집을 나쁘게 말하는 것 같아서요. 내가 자유롭게 외출하지 못하는 것이나 먹기 싫은 것을 먹어야 하는 것이 잘못된 거라고 말하니까요. 그러다가 피플퍼스트서울센터에서 먼저 탈시설한 동지들을 만났습니다. 피플퍼스트서울센터 동지들과 시설에서의 기억을 정리하는 작업을 했는데, 그 기억들을 들으면서 집이 그런 곳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탈시설을 결심했어요.

같이 살아 보자는 말

하지만 그렇게 금방 탈시설이 되진 않았습니다. 전 아주 스펙터클하게 나왔어요. 작년 여름이었죠, 서울시 장애인탈시설지원조례가 폐지될 위기에 놓였을 때 피플퍼스트 동료들이랑 탈시설지원조례를 지키기 위해 24시간 공동행동을 열었어요. 우리가 시설이 아닌 동네에서 살고 싶은 이유와 살아야 하는 이유의 대해 이야기했어요. 탈시설지원조례를 없애려고 하는 사람이 서울시의원들이라 시의원들에게 탈시설지원조례가 있어야 하는 이유, 이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조례인지 편지로 알렸어요. 이 과정에서 한 서울시의원이 제가 살고 있는 시설을 인권 침해 시설로 고발했고, 시설은 “네가 우리 시설 고발했냐?”, “네가 한 게 맞냐?” 하며 저를 괴롭혔습니다. 전 그날 이후로 당장 시설에 들어가지 않았어요. 시설을 나왔어도 공격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땐 정말 힘들었어요. 주변에 저와 함께하는 동료들이 없었다면 저는 아마 계속 시설의 공격을 받았겠죠?

그 무렵 저는 시설에서 운영하는 체험홈에 살고 있었습니다. 체험홈은 말로는 체험을 해 본 후에 자립을 하도록 하는 집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규칙이 있고 자립을 지원하지는 않는 그냥 시설입니다. 그 시설에서 정한 저의 작년 목표가 자립이었는데도 시설에서는 저의 탈시설을 반대했습니다. 시설에서 나가는 건 똑같은데 자립이라 말하는 건 되고 탈시설이라 말하는 건 안 되는 것인지 아직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시설에서는 시설에서 나가면 다 자립이라고 했습니다. 원가정으로 돌아가도 자립, 자립생활주택으로 나가도 자립, 그룹홈으로 들어가도 자립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립하면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알려 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몰라서 답답했고, 무서웠습니다. 제가 원한 건 온전히 저로 사는 것이었는데 자립생활주택이나 그룹홉으로 나간 언니들에게 물었을 땐 그곳도 또 다른 규칙이 있어서 자립을 했다고 느끼지 않는다고 말해 줬습니다. 그래서 전 그룹홈이나 자립생활주택이 아니라 내 집을 얻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는 결국 자립생활주택을 통해 탈시설했습니다. 자립생활주택으로 탈시설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때 상황이 너무 급했고, 미래가 없어 보였고, 당장 들어갈 집이 저에겐 필요했습니다. 제 자신을 돌보기 위해서라도 시설에서 꼭 나가야 했는데 시설과 탈시설을 막으려는 사람들 때문에 속상하고 답답하고 분했습니다. 탈시설을 마음먹고부터는 많이 아팠습니다. 열심히 돈을 모았지만 제 돈으로 집을 구할 수도 없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 할 수 있는 게 없는 제가 너무 싫어서요. 이때 주변 동료들이 말해 줬습니다. 전 아무 잘못이 없다고요. 동료들이 없었다면 제가 어떻게 되었을지 아직도 시설에서 직원들 눈치 보며 살고 있을지, 아니면 혼자 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동료들한테는 말을 안 했지만 그때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죽고 싶기도 했거든요. 하지만 동료들이 같이 살아 보자고 해 줘서 제가 지금 이렇게 지역사회에서 살아 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머리 아프지만 행복한 결정들

그렇게 자립생활주택에서 6개월 정도를 지내다가 지금의 집을 구해 나오게 되었습니다. 탈시설의 장점은 너무나도 많지만 많이 알려진 장점으로 내가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가는 것, 외출할 때 허락받지 않아도 되는 것이 좋습니다. 좋은 것은 많으면 좋으니까 더 찾아보면 친구 만나는 것도 자유롭고요. 먹기 싫은 것을 억지로 먹지 않아도 되고요. 전 이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매 순간 탈시설하길 잘했다고 느낍니다. 밥을 먹을 때, 친구 만날 때. 무언가를 볼 때, 먹을 때, 자고 일어났을 때, 거리를 걸을 때,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릴 때, 일정을 계획할 때, 결정할 때. 결정하는 건 많은 생각을 해야 해서 머리가 아프지만 그래도 행복해요. 내가 결정할 수 있어서요. 시설에 있었다면 시설 종사자들이 나의 의견도 묻지 않고 결정했을 테니까.

전 앞으로도 이렇게 탈시설하면 좋은 점을 더 알아가고 좋은 점을 누리며 살고 싶고, 아직 시설 안에서 살고 있는 3만 명의 동료들이 진짜 하루빨리 지역사회로 나와서 지역사회의 재미를 느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정부에게 탈시설이 중요한 권리라는 것을 친절히 알려 드리고, 탈시설뿐만 아니라 장애인의 권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리며 살아야겠지요? 우리가 외치고 있는 것을 더 많은 시민분들이 알 수 있도록 해야 하겠고, 언제 어디서든 차별을 만나면 저항하며 살아야겠지요? 전 인권활동가니까요. 인권에 대해서 더 알기 위해 머리 아프지만 공부도 해야 하고, 아무튼 저는 장애인이 차별받으며 살아온 것을 이 세상에 더 멀리 알려야 하고 장애인이 이 세상에서 차별받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도 이 세상에 멀리멀리 알려 나가야 되겠습니다.

피플퍼스트성북센터에서 1년간 활동을 마치고 현재는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서울지부 공동대표와 서울장애인차별철페연대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어요. 장애인이 이동하고 노동하고 교육받으며 감옥 같은 거주시설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시민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알리고 있습니다. 중점적으로는 탈시설 권리를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지만 저는 탈시설 권리만 알리는 것이 아니라 여러 의제의 투쟁들을 하고 있습니다. 권리는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3만 명의 사람 소리가 나는 설을 위해

전 시설에 살 때부터 탈시설운동을 했어요. 시설에서 살 때는 진짜 살고 싶어서 탈시설운동을 했고, 탈시설한 지금은 탈시설을 하지 못하고 있는 동료들이 생각나서 탈시설운동을 하는 것 같아요. 탈시설한 동지들은 내가 살았던 시설을 떠올리며 탈시설운동할 때 힘을 얻는 것 같아요. 전 그래요, 운동하다가 힘들면 시설 동료들을 떠올려요. 그럼 다시 싸울 힘이 나요. 이 정부가 탈시설을 권리로 인정하지 않는 것도 열받고 오세훈 시장이 탈시설 정책, 예산은 줄이면서 시설 정책이나 예산을 늘리는 것도 열받아요. 열받는 것도 저의 원동력인 것 같아요. ‘열받으니까 싸워야지.’ 싸우면 힘은 들지만 세상은 천천히 조금씩 바뀌니까요. 전 믿어요. 세상은 바뀌고 바뀌어 왔잖아요. 그렇게 시설 문 하나씩 닫으면 돼요. 급하지 않게 천천히 하나씩 하면 돼요.

그래도 시설에 관한 발언문을 쓸 때는 아직 좀 힘들어요. 힘든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니까. 그래도 저의 이 목소리가 누군가에게는 힘이 될 거라는 것을 전 알거든요. 이게 저를 움직이게 하는 것 같아요. 진짜 힘들 땐 ‘힘든 건 힘든 거고 이건 내가 해야 될 일이야’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비장애인이 외치는 것보다 탈시설 당사자가 목소리를 내야 세상이 변하니까요. 목소리 내는 사람이 없으면 세상은 변하지 않을 테니까요. 수많은 당사자의 목소리가 합쳐져서 바뀔 세상을 상상하며 힘을 내요.

탈시설 당사자들을 만날 때는 힘을 얻어요. 싸움을 같이하는 동지라고 느껴져서요. 그리고 우리의 투쟁에 연대하는 시민분들을 만날 때도 힘을 얻고요. 천주교의 탈시설 억압에 저항하면서 혜화동성당 종탑에 올라갔었는데 그때 특히 힘이 많이 되었어요. 지치지 않을 수 있었어요. 매일같이 성당 앞을 가득 채워 주셨거든요. 투쟁하다가 힘들 때 우리의 투쟁에 연대하는 시민들을 떠올리면 진짜 기운을 많이 얻어요. 우리 투쟁에 연대하고 응원하는 시민분들도 있으니까 힘내자고 생각해요. 가끔 너무 힘들면 주저앉아도 내 자리를 채워줄 동지가 있어 안심하기도 해요. 그 힘에 얼른 기운 차려서 투쟁할 힘을 키우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전 사람 소리가 나는 게 좋아요. 사람 소리가 안 나면 기분이 울적해요. 이번 추석 때 좀 외로웠던 것처럼요. 명절같이 시끌벅적해야 하는 날 혼자 집에 있으려니 외롭더라고요. 밖에 나가 뭘 해도 기분도 안 나고 재미도 없고. 이때 사람의 힘을 느꼈어요. 그러니까 더 열심히 투쟁을 해야겠어요. 시설에 있는 3만 명의 동료들이 다 나오면 다시 명절이 시끌벅적해질 거잖아요. 전 외로운 거 싫거든요. 이번 설은 지난 추석과는 다를 거예요. 그렇게 만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