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저는 충북 청주시에서 살고 있는 김오수라고 합니다. 다사리장애인자립센터에서 자조모임을 활동하고 있습니다.
44년 동안 살아온 삶의 이야기
나는 한마디로 감옥 속에서 사는 것 같았어요. 매일의 삶이 신체적·언어적 폭력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말 한 마디조차 허락되지 않았고, 가족들의 결정에 무기력하게 순응해야 했죠. 형과 누나의 차가운 눈빛과 따돌림은 내 존재를 투명인간으로 만들었습니다.
‘왜 나만 이렇게 비참할까?’라는 자책과 분노, 무력감이 동시에 밀려올 때면, 마음 깊은 곳이 흔들리고 무너졌어요. 나는 늘 살아 있는 듯, 죽어 있는 듯 그 안에 머물러 있었죠.
어쩌면 그곳에서는 나 자신을 지킬 힘조차 잃어버릴 걸 알았기 때문인지도 몰라요. 설령 살아남더라도, 영혼마저 납작해져 버릴까 봐 두려웠습니다.
충주에서 다녔던 ‘숭덕학교’에서도 나는 낯선 존재였습니다. 주변의 편견과 차별은 여전히 나를 따라다녔고, 다시금 스스로를 숨겨야만 했습니다. 이제는 달라지고 싶었어요. 이 숨 막히는 현실에서 벗어나 나답게, 내 방식대로, 자유롭고 존엄하게 살고 싶다는 결심이 단단하게 자리했습니다. 그렇게, 자립이라는 길 위에 발을 내디뎠어요.
자립해서 지역사회에서⋯
2019년 4월에 처음으로 다사리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체험홈이라는 곳에 입주하였습니다. 그 이후 자립홈에 입주하게 되었습니다. 자립홈에 있으면서 활동지원사 선생님은 마치 제 옆에서 함께 길을 찾아 주는 좋은 조력자 같았어요. 주거 상담이나 예산 계획, 공공기관 방문까지 실질적인 도움을 주셨고, 무엇보다 ‘혼자서도 잘해 낼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 주셨어요. 아파트 정보를 알아 보는 건 처음이라 막막했지만 지역 복지기관에 문의하고, 상담을 통해 현실적인 조건들을 하나씩 정리해 나갔습니다. 보증금이나 계약 조건도 낯설었지만, 그 과정에서 만난 좋은 활동지원사 선생님과의 상담이 큰 등불이 되어 주었어요. 그렇게 새로운 삶이 일상이 되어 갈수록, 이제는 내 안에서 스스로를 응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나답게, 존엄하게 살겠다.’는 다짐이 마음 깊이 단단해졌어요. 오랫동안 상처로 얼룩졌던 기억들이 조금씩 치유되며, 자유라는 단어가 날마다 현실이 되어 갔습니다.
자립한 후
자립 후 주민센터에 가서 전입 신고는 어떻게 하는지 배워 보기도 하고 지역사회 살아가는 법, 교통 이용 방법이나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접근성과 관계된 교육 등 다양한 경험도 하며 부딪쳐 봤습니다. 하지만 여러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집에서 하지 못했던 길 찾기, 버스 타기, 식당 가기, 카페 가기, 혼자 여행을 가기 위해 찾아도 봤습니다. 해 보고 싶었던 것도 했습니다. 미용실 가서 머리도 깎고, 한 번도 가지 못한 여행도 자립한 이후 많이 다녔습니다. 자립해서 한 번도 못해 본 경험에 너무 소중했습니다.
다양한 활동 이야기
그리고 집에서는 하지 못했던 다양한 경험이나 자립생활에 대한 이야기 등을 하기 위해 시설에 계신 동료분들과 이미 탈시설한 당사자분끼리 모여서 한 달에 한 번씩 자조모임을 통해 영화 보기, 여행을 가기 시작하였습니다. 먼저 탈시설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였습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경험들과 자조모임을 꾸준히 활동할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충북 청주시에서 살고 있는 김오수라고 합니다. 다사리장애인자립센터에서 자조모임을 활동하고 있습니다.
44년 동안 살아온 삶의 이야기
나는 한마디로 감옥 속에서 사는 것 같았어요. 매일의 삶이 신체적·언어적 폭력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말 한 마디조차 허락되지 않았고, 가족들의 결정에 무기력하게 순응해야 했죠. 형과 누나의 차가운 눈빛과 따돌림은 내 존재를 투명인간으로 만들었습니다.
‘왜 나만 이렇게 비참할까?’라는 자책과 분노, 무력감이 동시에 밀려올 때면, 마음 깊은 곳이 흔들리고 무너졌어요. 나는 늘 살아 있는 듯, 죽어 있는 듯 그 안에 머물러 있었죠.
어쩌면 그곳에서는 나 자신을 지킬 힘조차 잃어버릴 걸 알았기 때문인지도 몰라요. 설령 살아남더라도, 영혼마저 납작해져 버릴까 봐 두려웠습니다.
충주에서 다녔던 ‘숭덕학교’에서도 나는 낯선 존재였습니다. 주변의 편견과 차별은 여전히 나를 따라다녔고, 다시금 스스로를 숨겨야만 했습니다. 이제는 달라지고 싶었어요. 이 숨 막히는 현실에서 벗어나 나답게, 내 방식대로, 자유롭고 존엄하게 살고 싶다는 결심이 단단하게 자리했습니다. 그렇게, 자립이라는 길 위에 발을 내디뎠어요.
자립해서 지역사회에서⋯
2019년 4월에 처음으로 다사리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체험홈이라는 곳에 입주하였습니다. 그 이후 자립홈에 입주하게 되었습니다. 자립홈에 있으면서 활동지원사 선생님은 마치 제 옆에서 함께 길을 찾아 주는 좋은 조력자 같았어요. 주거 상담이나 예산 계획, 공공기관 방문까지 실질적인 도움을 주셨고, 무엇보다 ‘혼자서도 잘해 낼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 주셨어요. 아파트 정보를 알아 보는 건 처음이라 막막했지만 지역 복지기관에 문의하고, 상담을 통해 현실적인 조건들을 하나씩 정리해 나갔습니다. 보증금이나 계약 조건도 낯설었지만, 그 과정에서 만난 좋은 활동지원사 선생님과의 상담이 큰 등불이 되어 주었어요. 그렇게 새로운 삶이 일상이 되어 갈수록, 이제는 내 안에서 스스로를 응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나답게, 존엄하게 살겠다.’는 다짐이 마음 깊이 단단해졌어요. 오랫동안 상처로 얼룩졌던 기억들이 조금씩 치유되며, 자유라는 단어가 날마다 현실이 되어 갔습니다.
자립한 후
자립 후 주민센터에 가서 전입 신고는 어떻게 하는지 배워 보기도 하고 지역사회 살아가는 법, 교통 이용 방법이나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접근성과 관계된 교육 등 다양한 경험도 하며 부딪쳐 봤습니다. 하지만 여러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집에서 하지 못했던 길 찾기, 버스 타기, 식당 가기, 카페 가기, 혼자 여행을 가기 위해 찾아도 봤습니다. 해 보고 싶었던 것도 했습니다. 미용실 가서 머리도 깎고, 한 번도 가지 못한 여행도 자립한 이후 많이 다녔습니다. 자립해서 한 번도 못해 본 경험에 너무 소중했습니다.
다양한 활동 이야기
그리고 집에서는 하지 못했던 다양한 경험이나 자립생활에 대한 이야기 등을 하기 위해 시설에 계신 동료분들과 이미 탈시설한 당사자분끼리 모여서 한 달에 한 번씩 자조모임을 통해 영화 보기, 여행을 가기 시작하였습니다. 먼저 탈시설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였습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경험들과 자조모임을 꾸준히 활동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