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 시절의 기억
나는 어렸을 때, 아빠와 엄마, 누나와 남동생과 살았습니다. 아빠와 엄마는 자주 다투고 사이가 안 좋았습니다. 아빠는 술도 먹고 길에서 행패도 부리고, 어린 나에게 술을 사오라고 시켜서 기분이 안 좋았습니다. 엄마는 추어탕 식당에서 일을 하였습니다. 엄마는 나에게 “아들, 밥 먹고 가라.”라는 말을 하셨습니다. 나는 어릴 때 잘 뛰어노는 아이였습니다. 학교를 다닐 때는 남자 친구, 여자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옛날에 나는 잘 안 씻었습니다. 엄마와 누나가 큰 다라이에 나를 앉혀 놓고 호스로 물을 틀어서 씻겼는데, 나는 씻기 싫어서 도망간다고 뛰어다녔습니다. 엄마가 씻겨주고 닦아주고 옷도 입혀줬습니다. 잘 씻으면 누나가 새 책도 사주었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내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두 분 다 돌아가셨습니다. 나는 병원에 입원한 동안 엄마아빠와 1시간 면회를 했습니다.
병원에서 퇴원한 후, 가족들이 보고 싶어서 할머니와 삼촌을 찾아갔었습니다. 할머니는 “잘 왔다”고 말하며 안아주셨습니다. 그렇지만, 삼촌은 현관문 앞에서 나를 못 들어가게 하고, 커피도 한 잔 주지 않고, 나에게 “이제 할머니 아프니까 찾아오지 마라”고 했습니다.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 이후로는 할머니를 보러 안 가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시설에서의 생활
나는 12살에 장애인생활시설로 가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아파서, 누나가 나를 시설로 보냈습니다. 나는 집에서 가족들이랑 같이 살고 싶었는데, 엄마와 누나가 안 된다고 했습니다. 생활시설로 가는 날, 가기 싫다고 많이 울었습니다. 하지만 집으로 생활시설 원장님이 데리러 와서 나를 데리고 갔습니다. 나는 책가방을 매고 생활시설로 갔습니다. 시설에 도착해서는 집에 가고 싶다고 울었습니다.
시설에서는 담당 선생님이 나를 씻겨주었습니다. 시설에서도 씻을 때 씻기 싫어서 도망가고 싶었지만, 담당 선생님이라서 도망갈 수 없었습니다. 집에 가고 싶다고도 했지만, 집에 갈 수 없었습니다. 그때는 핸드폰도 없었고 어릴 때라 집에 갈 수 없었습니다.
시설에 살면서 중학교를 다녔습니다. 방학도 있었고 숙제도 했습니다. 시설에 살면서 제주도도 다녀왔습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시설에 살면서 아르바이트도 했습니다. 차 안으로 비가 안 들어가게 유리창에 고무를 끼는 일을 했습니다.
시설에 살면서 6시 기상, 7시에 밥을 먹었습니다. 밥은 담당 선생님이 주는 밥만 먹을 수 있었습니다. 더 먹고 싶다고 하면 밥은 더 주었습니다. 9시가 되면 잠을 자야 했습니다. 모두 자야 해서, 담당 선생님이 자라고 하면 잤습니다.
그렇게 해야 되는 거였습니다. 시설에 살 때, 기분이 안 좋았습니다.
자립홈 입주 후
나는 시설에서 살기가 싫었습니다. 그래서 담당 선생님한테 시설에 살기 싫다고 말을 하니, 시설 차를 타고 나와 자립홈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자립홈에 살게 되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자립홈에서 살 때, 아파트 단지 안에서 아기가 예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아기의 엄마가 신고를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법원에 갔습니다.
법원에서 병원에 가라고 해서 입원을 했습니다. 퇴원하는 날, 기분이 좋았습니다. 퇴원을 하고 나서 양산센터에서 같이 집을 찾아다녔습니다. 집을 구하러 다닐 때, 안은 안 보여주고 건물 밖만 보여줬습니다. 집에 살고 싶다고 말을 했는데 어떤 집주인은 장애인이라서 안 된다고 했습니다. 다시 집을 찾았을 때 들어갈 집을 구했습니다.
퇴원하고는 돈이 없었습니다. 양산센터에서 직장 체험을 하면서 돈을 모았습니다. 쓰레기도 치우고, 구멍도 뚫고, 파쇄도 했습니다. 일을 하면 출근 도장을 찍었습니다. 일하는 건 힘들었습니다. 오토바이 타고 다니는 선생님이랑 담배 피운다고 많이 싸웠습니다. 오토바이 선생님이 담배 많이 피우지 말라고 했습니다. 오토바이 선생님은 코에 호스를 꽂고 있었습니다. 김 팀장님이 안 말렸으면 오토바이 선생님은 나한테 한 방에 갔습니다.
권리중심 중증장애인맞춤형 공공일자리
양산센터에서 새로운 일자리가 있다고 해서 면접을 봤습니다. 면접에서 질문 듣고 말할 때 말을 잘 했습니다. 면접을 잘 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몸이 안 아플 때 여자친구도 사귀고 밥도 사 먹어야 해서 돈이 필요합니다.
권리중심 일을 하면서 투쟁하고 인권과 권리를 글로 적었습니다. 투쟁할 때 사람들이 울고 경찰이 밀고 당겨서 기분이 안 좋았습니다. 장애가 있어도 버스도 타고 권리도 있다고 외쳐야 하는데, 기분이 안 좋았습니다.
권리중심 일을 하면서 사람들도 만나고 친구도 사귀었습니다. 근로지원인 선생님도 만나서 웃음이 났습니다. 근로지원인 선생님이 눈이 건조하다고 하면 눈물액도 넣어주고, 손톱 영양제도 발라줍니다. 권리중심 일이 좋고, 계속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
나는 몸이 안 좋아져서 병원을 다니면서 건강을 챙기고 싶습니다. 그리고 일을 계속 하고 싶습니다. 나의 꿈은 돈을 많이 모아가지고, 여자친구 만나서 장가도 가고 아기도 낳고 싶습니다. 아기 우윳값도 내고, 유모차도 사고 싶습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
나는 어렸을 때, 아빠와 엄마, 누나와 남동생과 살았습니다. 아빠와 엄마는 자주 다투고 사이가 안 좋았습니다. 아빠는 술도 먹고 길에서 행패도 부리고, 어린 나에게 술을 사오라고 시켜서 기분이 안 좋았습니다. 엄마는 추어탕 식당에서 일을 하였습니다. 엄마는 나에게 “아들, 밥 먹고 가라.”라는 말을 하셨습니다. 나는 어릴 때 잘 뛰어노는 아이였습니다. 학교를 다닐 때는 남자 친구, 여자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옛날에 나는 잘 안 씻었습니다. 엄마와 누나가 큰 다라이에 나를 앉혀 놓고 호스로 물을 틀어서 씻겼는데, 나는 씻기 싫어서 도망간다고 뛰어다녔습니다. 엄마가 씻겨주고 닦아주고 옷도 입혀줬습니다. 잘 씻으면 누나가 새 책도 사주었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내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두 분 다 돌아가셨습니다. 나는 병원에 입원한 동안 엄마아빠와 1시간 면회를 했습니다.
병원에서 퇴원한 후, 가족들이 보고 싶어서 할머니와 삼촌을 찾아갔었습니다. 할머니는 “잘 왔다”고 말하며 안아주셨습니다. 그렇지만, 삼촌은 현관문 앞에서 나를 못 들어가게 하고, 커피도 한 잔 주지 않고, 나에게 “이제 할머니 아프니까 찾아오지 마라”고 했습니다.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 이후로는 할머니를 보러 안 가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시설에서의 생활
나는 12살에 장애인생활시설로 가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아파서, 누나가 나를 시설로 보냈습니다. 나는 집에서 가족들이랑 같이 살고 싶었는데, 엄마와 누나가 안 된다고 했습니다. 생활시설로 가는 날, 가기 싫다고 많이 울었습니다. 하지만 집으로 생활시설 원장님이 데리러 와서 나를 데리고 갔습니다. 나는 책가방을 매고 생활시설로 갔습니다. 시설에 도착해서는 집에 가고 싶다고 울었습니다.
시설에서는 담당 선생님이 나를 씻겨주었습니다. 시설에서도 씻을 때 씻기 싫어서 도망가고 싶었지만, 담당 선생님이라서 도망갈 수 없었습니다. 집에 가고 싶다고도 했지만, 집에 갈 수 없었습니다. 그때는 핸드폰도 없었고 어릴 때라 집에 갈 수 없었습니다.
시설에 살면서 중학교를 다녔습니다. 방학도 있었고 숙제도 했습니다. 시설에 살면서 제주도도 다녀왔습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시설에 살면서 아르바이트도 했습니다. 차 안으로 비가 안 들어가게 유리창에 고무를 끼는 일을 했습니다.
시설에 살면서 6시 기상, 7시에 밥을 먹었습니다. 밥은 담당 선생님이 주는 밥만 먹을 수 있었습니다. 더 먹고 싶다고 하면 밥은 더 주었습니다. 9시가 되면 잠을 자야 했습니다. 모두 자야 해서, 담당 선생님이 자라고 하면 잤습니다.
그렇게 해야 되는 거였습니다. 시설에 살 때, 기분이 안 좋았습니다.
자립홈 입주 후
나는 시설에서 살기가 싫었습니다. 그래서 담당 선생님한테 시설에 살기 싫다고 말을 하니, 시설 차를 타고 나와 자립홈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자립홈에 살게 되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자립홈에서 살 때, 아파트 단지 안에서 아기가 예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아기의 엄마가 신고를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법원에 갔습니다.
법원에서 병원에 가라고 해서 입원을 했습니다. 퇴원하는 날, 기분이 좋았습니다. 퇴원을 하고 나서 양산센터에서 같이 집을 찾아다녔습니다. 집을 구하러 다닐 때, 안은 안 보여주고 건물 밖만 보여줬습니다. 집에 살고 싶다고 말을 했는데 어떤 집주인은 장애인이라서 안 된다고 했습니다. 다시 집을 찾았을 때 들어갈 집을 구했습니다.
퇴원하고는 돈이 없었습니다. 양산센터에서 직장 체험을 하면서 돈을 모았습니다. 쓰레기도 치우고, 구멍도 뚫고, 파쇄도 했습니다. 일을 하면 출근 도장을 찍었습니다. 일하는 건 힘들었습니다. 오토바이 타고 다니는 선생님이랑 담배 피운다고 많이 싸웠습니다. 오토바이 선생님이 담배 많이 피우지 말라고 했습니다. 오토바이 선생님은 코에 호스를 꽂고 있었습니다. 김 팀장님이 안 말렸으면 오토바이 선생님은 나한테 한 방에 갔습니다.
권리중심 중증장애인맞춤형 공공일자리
양산센터에서 새로운 일자리가 있다고 해서 면접을 봤습니다. 면접에서 질문 듣고 말할 때 말을 잘 했습니다. 면접을 잘 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몸이 안 아플 때 여자친구도 사귀고 밥도 사 먹어야 해서 돈이 필요합니다.
권리중심 일을 하면서 투쟁하고 인권과 권리를 글로 적었습니다. 투쟁할 때 사람들이 울고 경찰이 밀고 당겨서 기분이 안 좋았습니다. 장애가 있어도 버스도 타고 권리도 있다고 외쳐야 하는데, 기분이 안 좋았습니다.
권리중심 일을 하면서 사람들도 만나고 친구도 사귀었습니다. 근로지원인 선생님도 만나서 웃음이 났습니다. 근로지원인 선생님이 눈이 건조하다고 하면 눈물액도 넣어주고, 손톱 영양제도 발라줍니다. 권리중심 일이 좋고, 계속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
나는 몸이 안 좋아져서 병원을 다니면서 건강을 챙기고 싶습니다. 그리고 일을 계속 하고 싶습니다. 나의 꿈은 돈을 많이 모아가지고, 여자친구 만나서 장가도 가고 아기도 낳고 싶습니다. 아기 우윳값도 내고, 유모차도 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