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2000년 5월, 2남 1녀 중 막내로 광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제가 휠체어에만 있는 것이 안타까웠던 부모님은 아주 어렸을 때 역술가를 찾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 역술가는 제가 20살 때 걸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 말에 아버지는 아직도 기대를 품고 늘 저의 안부를 물으며 운동과 재활을 잘하고 있는지 자주 질문하십니다. 제가 휠체어를 박차고 벌떡 일어나 걸을 수 있다는 희망과 기대를 하고 계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거 같습니다.
4살이 되었을 때 행복재활원에서 생활하게 되었고 그곳에는 또래 친구들과 형, 누나들이 저를 반겨주었습니다. 여섯 살부터 은혜학교 유치부를 다니기 시작하여 고등학교 졸업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중학교 체육 선생님으로부터 보치아 운동을 권유를 받아 시작하게 되었고 그렇게 전국학생체전에서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도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로도 학생체전에 재출전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1등을 거머쥔 적도 있었습니다. 보치아 운동은 저 혼자만 잘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닌 단체전 경기에서는 함께 호흡을 맞추는 협동심도 필요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출전했던 팀원이 오방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현재 함께 활동하는 배영준 선배입니다.
보치아 선수로 생활하던 중 사춘기가 찾아오게 되어 여러 가지 감정 변화 속에서 보치아 선수 생활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의 청소년기에 가장 힘든 선택이 되었던 거 같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보내고 있을 때 ‘실로암사람들’에서 주최하는 ‘장애 청소년 통합캠프’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행복재활원에서도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장애 청소년 통합캠프 참여는 저의 마음을 잔잔하게 물결치게 하고 새로운 삶을 기대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거 같았습니다.
그렇게 찬양과 기도를 그 누구보다 크고 열정 넘치게 참여하였고,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다시 한번 불씨가 되어 힘든 시기를 딛고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성인이 되기 전, ‘마지막 한 해를 여러 가지 도전 속에서 보내야겠다.’라는 생각에 진로에 관련된 대회나 프로그램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성인이 되면 돈도 많이 벌어서 다양한 곳 여행도 하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도 하고 싶은 마음에 꿈을 꿔보며 하루 빨리 성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2019년 1월 고등학교 졸업하며,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2월 말에 오방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자립생활주택에 입주하였습니다. 그리고 따뜻한 봄이 되었을 때 실로암사람들 임대주택으로 이사하여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루라도 빠르게 내 이름으로 된 자립을 하고 싶었지만 모아둔 돈이 없었기에 3년 8개월 기간 동안 돈을 아끼고 아껴 가며 완전자립 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2024년 1월, 저의 이름으로 계약을 하고 제가 원하는 가전과 가구를 구매하여 완전자립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북구청 일자리로 빠짐없이 근무도 하고, 제가 자립하기 전까지 경험하였던 어려움을 나누고 완전자립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하고자 오방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는 2000년 5월, 2남 1녀 중 막내로 광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제가 휠체어에만 있는 것이 안타까웠던 부모님은 아주 어렸을 때 역술가를 찾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 역술가는 제가 20살 때 걸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 말에 아버지는 아직도 기대를 품고 늘 저의 안부를 물으며 운동과 재활을 잘하고 있는지 자주 질문하십니다. 제가 휠체어를 박차고 벌떡 일어나 걸을 수 있다는 희망과 기대를 하고 계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거 같습니다.
4살이 되었을 때 행복재활원에서 생활하게 되었고 그곳에는 또래 친구들과 형, 누나들이 저를 반겨주었습니다. 여섯 살부터 은혜학교 유치부를 다니기 시작하여 고등학교 졸업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중학교 체육 선생님으로부터 보치아 운동을 권유를 받아 시작하게 되었고 그렇게 전국학생체전에서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도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로도 학생체전에 재출전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1등을 거머쥔 적도 있었습니다. 보치아 운동은 저 혼자만 잘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닌 단체전 경기에서는 함께 호흡을 맞추는 협동심도 필요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출전했던 팀원이 오방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현재 함께 활동하는 배영준 선배입니다.
보치아 선수로 생활하던 중 사춘기가 찾아오게 되어 여러 가지 감정 변화 속에서 보치아 선수 생활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의 청소년기에 가장 힘든 선택이 되었던 거 같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보내고 있을 때 ‘실로암사람들’에서 주최하는 ‘장애 청소년 통합캠프’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행복재활원에서도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장애 청소년 통합캠프 참여는 저의 마음을 잔잔하게 물결치게 하고 새로운 삶을 기대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거 같았습니다.
그렇게 찬양과 기도를 그 누구보다 크고 열정 넘치게 참여하였고,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다시 한번 불씨가 되어 힘든 시기를 딛고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성인이 되기 전, ‘마지막 한 해를 여러 가지 도전 속에서 보내야겠다.’라는 생각에 진로에 관련된 대회나 프로그램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성인이 되면 돈도 많이 벌어서 다양한 곳 여행도 하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도 하고 싶은 마음에 꿈을 꿔보며 하루 빨리 성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2019년 1월 고등학교 졸업하며,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2월 말에 오방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자립생활주택에 입주하였습니다. 그리고 따뜻한 봄이 되었을 때 실로암사람들 임대주택으로 이사하여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루라도 빠르게 내 이름으로 된 자립을 하고 싶었지만 모아둔 돈이 없었기에 3년 8개월 기간 동안 돈을 아끼고 아껴 가며 완전자립 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2024년 1월, 저의 이름으로 계약을 하고 제가 원하는 가전과 가구를 구매하여 완전자립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북구청 일자리로 빠짐없이 근무도 하고, 제가 자립하기 전까지 경험하였던 어려움을 나누고 완전자립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하고자 오방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