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2025 자립왕 수기3-이미자] “살 맛 나요, 매일이 행복해요”

JH
2025-11-24
조회수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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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저는 서울 문래동에서 2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발달장애인인 저는 평범한 가정에서 초중고를 다니며 자랐지만, 발달장애인으로 살아갈 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걱정과 근심이 가득 찼던 엄마는 어릴 적부터 저에게 “너 두고 혼자 갈 수 없으니 나랑 같이 죽자”고 하셨습니다. 그 말이 그때도 지금도 생각하면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이사하기 전까지 부모님 밑에서 그럭저럭 잘 보냈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결혼 그리고 폭력

27세, 수원으로 이사 후 같은 빌라의 아주머니가 며느리 삼고 싶다는 말에 30세에 비장애인 남편과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막노동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결혼하고 아이도 생겼습니다. 큰딸은 비장애인으로, 작은딸은 발달장애인으로 태어났습니다.

결혼 초부터 시작된 남편의 폭력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술을 먹을 때나, 먹지 않았을 때도 저를 보면 나가라 소리치고 폭행했습니다.

아이 둘을 키우기엔 남편의 벌이만으로는 생활이 힘들어 저는 공공근로와 공장을 다니며 일을 시작했습니다. 가정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폭력 앞에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하루는 친정집에, 하루는 여동생의 집에 돌아가며 피신하기를 반복했지만 남편의 폭력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가정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생각했고 남동생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남동생의 도움으로 남편과 이혼할 수 있었습니다. 이혼 후에도 아이 둘을 키우기 위해서는 일이 필요했고, 공공근로를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다 발달장애인인 작은딸을 키우기가 힘들어 시설로 보내고, 큰딸과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화가 나면 분노조절에서 어려움이 있는 큰딸은 저에게 잔소리와 함께 폭력이 시작되었습니다.

폭력을 피해 갈 곳을 찾던 중 학대 피해 장애인 쉼터를 알게 되어 쉼터에 입소하게 되었습니다. 쉼터 입소 후 딸의 폭력을 피할 수 있었지만, 혼자 있을 딸이 걱정되었습니다. 쉼터에 있을 때마다 큰딸은 다시는 때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여 집으로 돌아갔지만 딸의 폭력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쉼터와 집을 반복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쉼터 간사님을 통해 체험홈이라는 곳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큰딸이 있는 집이 아닌, 안산단원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운영하는 체험홈에 입주하게 되었습니다.

체험홈, 달라진 내 인생

3일간의 단기체험을 마치고 저는 체험홈에 입주하기로 했습니다. 내 집은 아니지만, 내 방이 있었습니다. 저를 지원해 줄 활동지원사 선생님도 만날 수 있을 거라 했습니다. 체험홈에서 함께 생활할 룸메이트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벗어나기 힘들었던 폭력은 더 이상 없었습니다. 저에게 상처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불편함도 없었습니다.

폭력에서 벗어나 안심했고, 안정을 찾아갔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복통이 시작됐습니다. 복통이 시작되면 음식을 먹을 수 없었고, 잠을 자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진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갔더니 병원에서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 후에 저는 정신과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고, 처방받은 약을 먹었습니다. 약을 먹으면서 복통이 점점 줄어 좋아졌습니다.

체험홈에 입주하면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먹고 싶은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게 되었습니다. 센터에서 운영하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오랜 시간 해왔던 공공근로와는 달랐습니다. 너무 즐거웠고, 행복했습니다.

체험홈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으로 여행도 가고, 동료, 친구들과 카페에 가서 커피도 마시고, 요리고 직접 해보고, TV에서만 보던 가수를 보기 위해 난생 처음 콘서트도 갔습니다. 너무 행복했습니다.

큰딸과는 가끔씩 연락도 하며 몇 번 만나기도 했습니다. 따로 떨어져 지내니 관계도 조금씩 좋아졌습니다.

자립, 하루하루가 너무 행복해요

체험홈의 2년 동안 자립을 준비하였습니다. 수급비와 월급으로 돈을 모았습니다. 자립정착금도 지원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센터에서는 제가 살아갈 곳을 알아보며 안산시장애인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자립주택에 대해 알려 주었습니다.

자립주택은 내 이름으로 계약하고 20년을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내 이름으로 된 집이 생기다니⋯. 꿈만 같았습니다. 집을 보러 갔을 때 생각했던 것보다 작았지만 혼자 살기에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약을 하고 나니 이사 날짜가 기다려졌습니다. 체험홈에서의 생활도 좋았지만, 내 이름으로 계약한 내 집에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기뻤습니다. 자립정착금으로 내가 원하는 가전제품과 가구들을 구입했습니다. 살면서 그렇게 많은 돈을 써본 건 처음이였습니다. ‘돈 쓰는 것이 이렇게 재미있구나.’ 생각했습니다.

2025년 5월 16일, 드디어 내 집으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너무 기뻐서 이 기쁨을 내가 아는 모든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저장된 전화번호의 모든 사람에게 전화하여 내 집이 생겼다고 자랑하였습니다. 모두 축하해 주었고 기뻐해 주었습니다. 큰딸도 기뻐해 주었습니다

이사 온 후에는 큰딸과의 관계는 더 좋아졌고 가끔 제 집에서 자고 가기도 합니다. 큰딸과 함께 식사를 하고, 쇼핑도 갔습니다. 그런 시간이 너무 행복했습니다. 저의 일상이 안정되자 기쁘고 행복한 일들이 가득해졌습니다.

저는 올해 환갑이 됩니다. 환갑을 축하하기 위해 10월에 큰딸과 함께 일본 여행을 가기로 하였습니다. 딸과 함께 여행갈 생각을 하니 그날이 기다려집니다.

나의 직장,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자립을 한 이후에도 저는 여전히 권리중심공공일자리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동료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낯선 환경과, 낯선 사람이 힘들어 괴롭고 우울했던 제가 이제는 행복한 생활을 동료들에게 이야기해 주는 것이 너무 좋습니다. 앞으로도 권리중심공공일자리에서 열심히 일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을 가며 하루하루 즐겁게 일하며 살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자립이 무섭고, 두렵고, 겁이 나는 사람들이 있다면 용기를 내서 도전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용기를 내면 행복이 찾아올 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